이제는 우리가락도 세계적 발돋움...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산타령 예능보유자 황용주
경·서도소리 대표, 58년 동안 ‘선소리산타령’ 외길 인생

경인투데이 | 기사입력 2012/11/16 [18:17]

이제는 우리가락도 세계적 발돋움...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산타령 예능보유자 황용주
경·서도소리 대표, 58년 동안 ‘선소리산타령’ 외길 인생

경인투데이 | 입력 : 2012/11/16 [18:17]
▲     © 경인투데이
 
요즘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차트 2위까지 오르며 대한민국 문화의 힘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 한류바람, 그러나 우리의 소리는 점차 사라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묵묵히 58년을 우리의 소리를 지키며 계승발전에 온 힘을 쏟고 있는이가 있다.
 
바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있는 우리소리 지킴이 황용주 선생

어린 시절 배운 한학을 바탕으로 국악 사설을 정리하고 음악적 이론을 정립한 이론가이기도 한 황 명창은 ‘한국고전음악선집’, ‘한국 경·서도 창악대계(상·하권)’, ‘한국 경·서도 창악산타령’등 세권의 저서를 펴냈고,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황 명창이 선소리산타령에 입문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193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그는 일자리를 찾으려고 고등하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왔다. 동대문에서 양품도매상 점원으로 일하던 그는 국립국악원에서 시조 강습생 모집 공고를 접하면서 故 이주환선생님에게 시조를 배우게 되었고, 그 뒤에 바로 故 벽파 이창배선생님을 만나서 가사, 시조, 경·서도 창 및 선소리산타령을 사사받았고, 1968년 4월 경기·서도 선소리산타령이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을 받은 후, 전수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고 벽파 이창배선생의 뒤를 이어 경·서도 선소리산타령의 전승교육에 힘을 쓰고 있다.

근래에 급격히 밀려들어오는 서구 문화의 내습으로 인해서 우리의 전통음악은 뒷전으로 밀려 인멸의 위기까지 이르렀으나 정부의 우리의 전통음악과 문화 창달의 시책에 힘입어 전승보급 발전에 힘이 되고 세계문화유산에 일부가 등재되기까지에 이른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경기지방에서 전승되어 오는 경기선소리산타령과 서도지방에서 전승되어오는 서도선소리산타령은 입창(立唱)형식, 즉 서서 부르는 노래이며, 경기12잡가와 서도좌창은 앉아서 부르는 노래로서 이 세 장르가 경·서도 소리의 대표적인 악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경기선소리산타령은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잦은산타령’, ‘개구리타령’이요, 서도선소리산타령은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경발림’ 등을 기본틀로 이어 부르는 노래이다.

그런데 옛날 우리들의 스승님과 선배님들의 시대에는 경기창과 서도창을 아울러서 같이 전승을 시킨 관계로 경·서도창이라고 명칭을 하고 또한 경·서도인이라고 부르며 경·서도창을 같이 전승시켰는데 요근래와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을 시키면서 경기민요(경기좌창, 제57호), 서도좌창(제29호), 경·서도선소리산타령(제19호) 등으로 분류되어 지금의 현실과 같이 분류되었던 것이다.

1960~70년대까지도 故 벽파 이창배선생님께서 전승시키시던 청구고전성악학원의 사범들을 보면 정가에는 김월하, 경기창에는 고 안비취, 묵계월, 이은주, 서도창에는 장학선, 김추월, 이반도화, 이정렬, 경기선소리산타령에는 이창배, 정득만, 서도선소리산타령에는 이창배, 장학선, 김추월 등으로 경·서도창의 종합적인 전승 장소였다.

황 명창은 첫 번째 서도소리 보유자 장학선선생의 애절한 감정과 섬세하고 절묘한 서도창의 표현에 깊이 빠져들어 서도소리에도 정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황용주 선생     © 경인투데이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산타령이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에 예능보유자 5인의 특기를 보면 故 이창배, 정득만, 김태봉 세 선생님은 경기선소리산타령의 기량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유개동 이창배 김순태 세 선생님은 서도선소리산타령의 기량에 뛰어나서 일로 인하여 경·서도 선소리산타령을 아울러 인정을 받아서 전승시켰던 것이다.

이 선소리산타령은 고려조가 망하고 조선조의 이태조가 등극하면서 억불숭유(抑佛崇儒)사상으로 인하여 불문의 파계승들이 비승비속의 신분으로 소고를 치며 가무와 같이 부르던 것이 선소리산타령의 시초가 되어 조선조 초기, 중엽을 거치는 동안에 민간의 음악으로 파생되었다.

특히 이 선소리산타령은 1800년대를 접어들며 뚝섬을 비롯하여 왕십리, 과천, 마포, 자하문 등지의 소리패들에 의하여 전승되면서 한강유역의 오강이며, 정월대보름의 탑교놀이에서 각패들이 서로 참여하여 밤새워 부르면서 흥을 돋았다고 해서 100년 전의 음악 파티장을 연상해 보면 그 때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선소리산타령은 196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된 이래 40여년이 지난 현재, 당시의 보유자들은 모두 타계하셨고, 지금은 제2세대의 선두주자인 황용주 선생이 선소리산타령 음악을 전승보급과 저변확대의 뜻을 가지고 재현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12년 10월 12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제자들을 데리고 제2회 서도선소리산타령 발표회를 열어 서도선소리산타령을 원형그대로 보여주고 그밖에도 서도소리 초한가, 영변가, 경기좌창 집장가, 금강산타령, 경기민요 등 여러장르의 수준 높은 공연을 한바 있다.

그는 “현재 880여 쪽짜리「경·서도 창악대계」를 내놓은 상태인데 이를 증보해서 1,200여 쪽짜리로 내놓으려고 막바지 노력 중이다. 또 우륵·왕산악·황진이·박연과 함께 현재 일선에서 활동하고있는 국악인들까지 아우르는 8권가량의「역대명인명창대전집」을 내려고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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